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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은 자신의 자녀들이 지혜가 이끄는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명철의 인도를 받으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슬기로운 사람으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생각 없이 사는 무지한 사람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사는 근신의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솔로몬은 아들을 위하여 자신이 깨달은 참된 지혜를 전해주려 하였습니다.
지혜는 삶에 매우 유익합니다. 잠언은 지혜의 삶의 권면하면서 그 유익에 대하여 확실하게 소개합니다. 1) 삶에 있어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잠 3:14-15)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며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여기던 정금이나 진주보다 귀하고 값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합니다. 은과 금이 필요 없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더 소중한 것을 잃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재물을 얻어 쌓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즐거움이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잠 3:17) 왜냐하면 재물을 얻는 기쁨은 일시적이지만 지혜는 평안한 삶과 생명으로 가는 길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아들이 두 가지 모두를 갖기를 원하였습니다. 지혜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지혜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압니다. 지식보다 소중함을 압니다. 2) 지식은 재물을 모으는 빨리 많이 모으는 방법을 알게 하지만 지혜는 바르게 모으는 방법, 오래 유지하고 흩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게 합니다. 재물과 생명이 누구에게서 오는 것인가에 대한 출처를 알게 하며 주시는 분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알게 합니다.
지혜가 주는 진정한 가치와 유익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1) 지혜는 살아가는 동안 인생의 바른 목표와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게 합니다.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이 보람되며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를 알게 합니다. 잘못된 목표는 인생을 헛된 길로 이끕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후회하게 만듭니다. 자신은 유익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달리지만 무익할 뿐 아니라 재앙의 길이 됩니다. 그러나 지혜는 과정과 결과를 유익하게 만듭니다. 2) 무엇보다 지혜가 귀한 것은 행복한 삶, 유익한 삶의 근원이 어디인가를 알게 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복의 근원이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임을 알게 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살리기도 하시며 죽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신 32:39) 솔로몬은 자신의 아들이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따르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3) 지혜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선택해야 할 바른 길을 알게 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하고 유익한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을 바로 갖게 하고 바른 판단을 하도록 돕습니다. 순간순간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어떠한 선택이 옳은 선택인지를 알게 합니다.
이 시대의 안타까움은 절대기준과 원리를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1) 많은 사람들이 절대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두에게 바르고 옳은 길은 없고, 각자가 좋아하고 옳다고 여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과 행동의 판단의 기준을 자기에게 두는 사람이 많습니다. 2)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옳고 바른 원칙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판단의 기준을 살아계신 하나님, 복과 저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게 두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솔로몬은 사람들이 행동을 할 때 스스로 옳다고 여기고 하지만 판단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6:2) 단순히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에 그가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가질 때, 항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알고 행하여야 합니다. 저는 오늘 사람들이 행동하고 판단하면서 그 행동과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기 원합니다. 본문을 통하여 성령님이 주시는 음성을 들으면서 삶에서 어떠한 판단의 기준을 가져야 하는가를 깨닫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세상 풍조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옳고 그름의 판단의 기준이 다양합니다. 1) 동조하는 사람의 수에 의하여 결정이 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결정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여론에 따라 결정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제주의 국가에서는 한 사람의 결정이 옳고 그름을 좌우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옳다고 하면 다 따라야 합니다. 2) 개인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스스로 옳고 그르다고 여기는 모든 판단이나 가치관의 형성이 무엇인가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집니다. 환경일 수도 있고 학습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3) 성경은 어떠한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 하나님의 판단 기준이 중심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잠언은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판단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추구하여야 할 길과 경계해야 할 길에 대하여 분명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지혜로운 삶을 위하여 미련한 삶을 멀리하라고 하였습니다. 의의 길을 위하여 불의의 길에서 벗어나라고 하십니다. 선한 길로 가기 위하여 악한 길에 서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3) 그러한 면에서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 가장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한 기본 원리를 알게 합니다.
* 대세적 흐름이라고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복된 길로 인도하시면서 하나님이 원치 않는 길을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받은 복을 잃지 않는 길을 알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땅에서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여 거주하게 될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풍습으로 인하여 올무가 되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신 12:30)
어떠한 모습으로도 그들의 풍습을 따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죄악의 대부분 시작은 주변의 풍습을 따름에서 노아의 때에 모든 사람이 죄를 일상적으로 지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죄가 시대의 흐름이었고 시대적 경향이었습니다. 악행이 유행이었고 추세였으며 대세였습니다. 자연스럽게 행하는 일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연스럽게 행한다고 옳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노아의 가정은 그렇게 살 수 없었습니다. 소수일지라도 구별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3) 많은 사람들이 판단의 기준을 남의 눈에 둡니다. 어떠한 행동을 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이 다른 사람의 시선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고민도 없이 유행에 따라갑니다. 세상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흐르는 물에 쓸려가는 죽은 고기와 같습니다. 솔로몬은 남들이 꾈지라도 옳지 않은 길이라면 함께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그 길을 걸을지라도 불의의 길이라면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성도들의 바른 삶에 대하여 권면하면서, 구원받기 이전의 모습 설명할 때 ‘세상 풍조를 따르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세상 풍조를 따르는 모습은 과거의 삶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반드시 버려야 할 특징이며, 구원받지 못할 사람의 특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삶의 결론은 하나님의 진노이며, 십자가의 공로를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길을 하려는 사람은 세대를 본받으려는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믿음의 삶은 구별된 삶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같은 땅에 살아도 다른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1) 어리석은 사람은 옳지 않은 길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이야 어찌하든지 자신은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힘을 다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은총을 받는 비결이며 구원의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과 바꿀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세상 풍조가 내 곁에서 소용돌이를 칠지라도 박차고 나오려고 힘을 다하며 하나님 앞에서 단호하게 거절하는 용기를 보여야 합니다.
둘째로, 자기 생각에 끌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도 모르고 따라가다가 망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돌아오라고 권면하는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들을 귀가 없어서 망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열린 귀를 가지고 있음으로 살 길을 찾습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 12:15) 1) 잠언은 어리석은 자보다 더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은 알게 합니다. 그는 악한 사람입니다. 악한 사람은 잘못된 길을 만드는 사람이며 어리석은 사람을 이끄는 사람입니다. 잘못된 풍조를 만들며 심판의 길로 이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길이 잘못된 길인 것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잘못된 길의 선봉에 서는 사람입니다. 2) 세상의 유행이나 풍조도 따르는 사람이 있지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떠한 일에나 주도하고 앞 장을 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문도 시작하는 사람이 있듯이 흐름도 주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악한 일, 좋지 못한 일도 주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아들은 선을 도모하는 자, 선한 일에 앞 장 서기를 원하였습니다. “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잠 14:22)
* 악한 일을 주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죄는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악한 길로 이끄는 사람이 있습니다. 1)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게 되는 경우도 이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와가 먼저 죄를 짓고 남편을 죄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1) 하나님의 부르심과 세우심을 받은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큰 어려움은 대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끌어 모아 반대의 길을 제시하며 대적하며 길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레위의 자손 고라와 르우벤 자손 다단과 같은 사람은 지휘관 250명을 선동하여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며 거룩한 행진을 방해하였습니다. 250명을 ‘회중 가운데 이름 있는 지휘관’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민 16:2) 이는 고라와 다단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것은 탁월한 능력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능력을 잘못된 면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악한 일에 주도한 그들과 따라간 사람들은 땅이 갈라져 스올에 빠짐으로 멸망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의 사역에는 언제나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사에게는 아합과 이세벨이 있었습니다. 에스더에게는 하만이 있었고 사도 바울에게는 구리장색 알렉산더와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3) 아무나 악한 일에 선봉에 서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능력이 있어야 하며 나름대로 창의적인 사람만 가능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6:25) 그러나 그 결과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가지 말아야 합니다.
* 오만과 독선이 이끌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일을 주도하는 사람은 특징이 있습니다. 1) 자기 아집이 강합니다. 문제는 바른 확신이 아니라 아집이 강합니다. 아집이 강한 사람은 영적으로 병든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눈이 가리어져서 자신들의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은 수 없이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엄청난 잘못에는 감각도 없습니다. 영적으로 귀가 닫혀 있습니다. 어떠한 권면의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말만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이러한 병폐를 보이고 있습니다. 2) 그들이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독선이 자신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어리석게 따르는 사람들로 인하여 자신들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자신들이 의도한 일을 스스로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에게 경고합니다. 그들의 아집과 독선이 하나님의 은혜를 막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망하게 한다고 경고합니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잠 11:3) 내 아집과 독선이 나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아들에게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인생을 살라고 권면하며 하나님이 무너지게 하는 길을 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기르면서 어떠한 이유로든지, 어떠한 유익이 있더라도 악한 일에 선봉에 서지 말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도 절대로 악한 길에는 앞 장 서는 미련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언약이 이끌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판단의 기준이 다릅니다.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판단이 항상 우선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까?’를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 이스라엘민족은 가끔 하나님의 시선을 잊어버릴 때가 있었습니다. 1)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것은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민족 공동체 전체의 정결함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일일지라도 단호하게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2) 자기주장이나 소견은 하나님의 은총의 장애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은 가끔 자기 소견에 의한 행동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진노하게 하였습니다. 3)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거하신 땅에서의 삶의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양으로 목자의 인도함을 믿고 전적으로 따르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인생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 지혜롭게 판단하여야 합니다.
솔로몬은 인생을 살면서 지략과 모략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나라의 미래는 지략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지략이 없는 어리석은 백성이 되지 않기를 원하였습니다. 지략을 통하여 슬기롭고 지혜로운 민족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잠 11:14) 1)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략이란 판단의 능력입니다. 인간적인 똑똑함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판단할 줄 아는 실력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능력을 인식하는 지혜입니다.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동행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임을 분별하는 지혜입니다. 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법을 떠났을 때, 이스라엘의 고난의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된 이방민족을 표현하면서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도다”(신 32:28) 그들이 모략이 없다는 이유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행하심을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과 수단이 뛰어나서 이스라엘을 이긴 것인 줄 알았습니다(신 32:27)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자신들을 쓰는 것에 불과함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때로는 낮추셔서 결국은 복을 주시는 계획을 몰랐습니다. 3) 가장 지혜로운 분별력, 최고의 모략은 하나님이 행하시도록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전적인 의뢰, 의탁, 맡김입니다.
* 말씀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판단의 원리는 하나님의 결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시면 순종하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유익하며 편합니다. 솔로몬은 삶의 길이 사람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1) 인생을 승리하는 최고의 모략이 중요합니다. 인생을 사는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결정에 아멘하며 따르면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결정을 아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점쟁이가 집의 방향을 잡아주고 날을 잡아주는 것과 같이 삶의 순간순간 어떠한 판단을 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동행하시며 인도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 솔로몬이 얻은 인생의 최고의 지혜는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행하게 하시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결론은 하나님이 친히 도우시며 은혜를 누리는 삶임을 알았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3)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과 길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며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길만 가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인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약속과 보장이 담겨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보증을 붙들고 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가나안까지 인도한 뒤 그들을 축복하면서 마지막에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그러므로 그러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라고 권면합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가문은 모세가 전해준 계명을 자신의 가문의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모든 가문의 사람들이 삶의 지침으로 삼기를 원하였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과 원칙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판단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바르게 판단을 하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판단을 잘못하는 사람입니다. 1)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의 판단에 맡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는 망하는 길을 생각도 없이 따라가지 않습니다. 생각도 없이 흐름에 자신의 삶을 맡기지 않습니다. 복된 길이라면 아무리 깊은 관계가 있을지라도 결별하며 다른 길을 걷습니다. 2)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며 오만과 독선에 빠져서 사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올무에 걸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며 다른 사람들까지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행동입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탁월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인생을 무도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아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지혜로운 판단으로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고 이루시는 삶을 이루기 원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름으로 가장 지혜로운 판단을 통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인천과 부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천과 부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때까지 복음을 전하는 부광의 가족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잠 20:24)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잠 16:33)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15:22)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잠 21:1-2)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잠 24:6)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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